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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트 슈타인 (십자가의 성녀 데레사 베네딕따)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유대계 독일 여성으로 오직 진리에만 전념하며 53년의 생애를 불꽃처럼 산 십자가의 데레사 베네딕다 성녀를 이렇게 평가하였다.

 

" 에디트 슈타인은 유대인이며 철학자요 순교자이며 수도자였습니다.

그는 빼어난 이스라엘의 딸인 동시에 가르멜의 딸 십자가의

데레사 베네딕다로서 우리 세기에 극적인 종합을 이루어낸 인물입니다."

 

뛰어난 지성의 소유자 에디트는 18911012일 목재상을 경영하는 부친 쟈크 프리드 슈타인과 모친 아구구스타 쿠랑 사이의 열한 자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날은 이스라엘의 축일인 "속죄의 " 이었기에 철저한 유대교인이었던 모친은 이 우연의 일치를 아주 좋은 징조로 여겼다.

어린시절부터 학문에 대해 맹렬한 의욕을 지녔고 두뇌도 명민하여 매우 완전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에디트는 별 뚜렷한 이유 없이 가정의 열렬한 종교적 분위기와는 점차 멀어져갔다. 무신론자로서 그는 25세 때 프라이부룩 대학에서 박사학위가 통과된 후 현상학의 창시자 후셀 교수의 수제자이며 유능한 조수로 철학계에서 활약했다. 합리주의 세계에서 자라나 여성으로서, 또 유대인으로서 여러 가지 좌절을 경험하던 에디트 앞에 문득 신앙의 세계가 펼쳐지면서 현상학을 통해 신앙 문제와 정면으로 마주치는 체험을 하게 된다. 어느날 친구의 집 서가에서 예수의 데레사 성녀 자서전을 우연히 보게 된 에디트"이것이 진리다!" 하고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유한한 지성이 절대적 현존의 필연적 언어로 말씀하시는 존재 자체이신 분을 드디어 이렇게 승인하게 된 것이다.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와의 만남으로 그는 192211일 가톨릭 세례대로 인도되었다. 이로써 그는 어린시절부터 그의 전 생애를 일관한 진리에 대한 추구가 무신론자였던 시기를 거쳐 그리스도께 접목되었을 때 곧바로 십자가의 신비로 날아들었다.

 

" 그리스도의 충만함에서 생겨난, 죽음을 쳐 이긴 교회가 비로소 제 눈에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동시에 나의 불신은 사라지고 유대교는 내 앞에

생기를 잃었습니다. 그 대신 그리스도의 빛,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신비에

내 마음은 사로잡혔습니다."

 

      

                  <가족사진 (앉아있는 3살날 소녀) >                                <1931(40) >

 

에디트는 명철하고 논리적인 지성인이자 뛰어난 교육자로서 1930년대 혼돈 속에 있던 독일에서 여성 교육의 중요성, 특히 "사랑하도록 부름받은" 여성의 소명을 선구자적 안목으로 지적하면서 유럽 각 곳에서 수많은 강연을 하기도 했다.

마침내 19331014일 퀼른 가르멜에 입회하였고, 구원은 오직 사랑의 속죄와 희생 덕분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생각하며 자신 역시 예수 그리스도와 비슷한 운명을 받아들일 각오로 "십자가의 데레사 베네딕다"라는 수도명으로 이듬해 착복 1938421일 종신서원을 하였다.

히틀러의 유대인 대학살이 절정에 달할 무렵인 1939년 성지주일에 자신의 민족 위에 드리워진 십자가를 지기 위해 베네딕다 수녀는 예수 성심께 자신을 속죄제물로 바쳤다.

 

 

 

비상한 지적 재능과 소박한 겸손은 그의 깊은 하느님 체험을 말해주고 있으, 훗날 제자들은 그를 "밝고 맑은 인품, 고요함에 사로잡힌 분"으로 , 철학자 친구들은 "주관주의로 찌그러진 사고를 비추어주는 투명한 거울로 중세 토마스 아퀴나스를 재조명한 에디트" 로 그의 능력과 인품을 평가

했다.

 

 

 

네덜란드 에히트 가르멜로 피신했던 에디트는 수도원 외부에서 일을 돕고 있던 언니 로사와 함께 194282일 나치스에 체포되어 89아우슈비츠의 가스실에서 자신의 이름이 아닌 그저 하나의 번호로 죽어 갔다. 그토록 절대적 지성의 빛 안에 치열하게 고뇌했던 인간으로서는 무의미하게까지 여겨질 이 어이없는 희생.... 그러나 그 십자가의 어리석음이야말로 사랑과 평화와 화해를 낳아주는 유일한 희망이다.

자신이 체험한 십자가와 사부 십자가의 성요한의 가르침 안에서 깊이 탐구했던 십자가의 신비를 자신의 삶과 죽음으로 완성하였다. 순교하기 직전 원장 수녀에게 보낸 마지각 편지에서 성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저는 모든 것에 만족합니다. 참으로 십자가의 무게로 고통당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십자가의 지혜를 얻게 됩니다.

처음부터 저는 이것에 대해 깊이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음 깊은 곳에서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AVE CRUX SPES UNICA !

훔숭하나이다. 십자가여, 유일한 희망이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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