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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성 요한

 

 

 

 

 

"이 세상에서 하느님과 사랑에 빠졌던 사람, 한평생 줄곧

성령이신 사랑의 불로 불붙어 끊임없이 타오르는 통나무처럼 살았던 사람, 하느님 안에서 삼라만상을 사랑한 사람." 요한은 1542년 스페인의 폰티베로스에서 유력한 가문 출신의 출신의 부친 곤잘로 예페스와 직조공으로 신앙심 깊은 유태계 출신의 고아 카타리나 알바레즈 사이에서 3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 폰티베로스의 현재의 모습 >

 

그들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기에 극도로 빈궁한 처지에서 자녀들을 양육해야 했으므로 요한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몫으로 일을 해야만 했다. 이런 환경 속에서 감수성이 매우 예민한 그의 마음 안에는 가난하고 불쌍한 사랑들이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가 일하고 있던 '라 부바 병원'의 원목이라는 안정된 직책을 제안 받았으나 자시의 자리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 요한은 1563년 가르멜(O.C)에 입회하여 4년 후 사제서품을 받았다.

 

이때 요한은 깊은 관상에 대한 갈망으로 수도회를 바꾸려고 마음먹고 있던 차에

가르멜 여자 수도회를 개혁한 예수의 데레사 성녀를 만나게 되었다.

성녀는 요한 수사를 즉시 꿰뚫어보고 당신 개혁 사업의 협력자로 택하여 그 이듬

1568년 11월 28일 두루엘로에 개혁 가르멜 남자 수도회를 창립하였다.

데레사 성녀가 영혼을 지도하기 위해 천부적 직관으로 쓴 책들을 성 요한은

견고한 신학으로 뒷받침하고 종합하여 가르멜 영성을 체계화하였다.

 

Todo Nada

십자가의 성 요한 영성을 한마디로 하자면 '아름다우신 하느님(Todo)을 얻기 위해 자신을 철저히 비우고 온갖 피조물에서 이탈하는 (Nada)것' 이것이다. 모든 것이신 하느님을 소유하기 위해 모든 것에서 이탈해야 한다는 단호한 비타협성을 우리는 흔히 오해하기 쉽다. 빛에 이르기 위해 영혼은 어둔밤을 거쳐야 하는데,이 어둔 밤은 가장 활동적인 밤으로 온갖 욕망에서 우리 영혼을 정화해주고 우리의 영적 생명을 원천으로 돌아가게 해준다.

 

'아름다우신 하느님(Todo)을 얻기 위해 자신을 철저히

비우고 온갖 피조물에 이탈하는 (Nada) 것 '

 

 

 

<십자가 성 요한의 필체>



 

데레사 성녀와 성 요한의 만남

하느님과 일치하기를 갈망하는 이런 영혼의 상태를 성인은 '스페인 서정시인의 주보성인'다운 아름다운 필치로 그려내었다십자가의 성 요한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성령을 힘입어 성령 안에서

도달하게 된 거룩함과 완전함의 본보기이다. 또한 성인은 온전히 인간다운 자세로 이 세상에서 자기 삶을 충실히 살았다.

사랑에 근거한 온유함과 동정심이 깃든 그의 성품은 이웃에 대해서는 예민하고 섬세하며 자상한 반면, 자신에 대해서는 철저한 이탈과 극기 고행으로 대했다. 이런 것이 성인에게 '무의 박사'라는

별명을 갖게 했으나 사실은 오롯한 사랑과, 모든 것에 이르는 절대 조건을 강조한 것이라는 의미에서 성인은 진실로 '사랑의 박사'이며 그의 삶의 인격을 합당하게 평가하는 데 사랑보다 더 특정적인 것은 없다.

사실상 개혁 가르멜의 영적 지도자였던 요한 성인은 개혁 이전의 가르멜과 개혁파 수도자들 사이에서 많은 고통을 받았으며 개혁이전의 가르멜 수도자들에 의해 감금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고통들은 요한 성인의 영혼 안에 더할 나위 없는 하느님 체험의 진수를 직조하는 기간이 되기도 했다. "이 생명의 저녁, 우리는 사랑으로 심판받으리라." 하고 말한

사랑의 박사 십자가의 성 요한은 "장상이 아닌 위치 에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고통 받으며 죽기를" 원했는데, 바로 그가 원하던 대로 이 모든 조건이 채워진 우베다 수도원에서 1591년 12월 13일 49세로 이승에서의 밤을 마쳤다.

  

  

<첫 개혁 가르멜 두루엘로>                                   <두루엘로 전경>  

 

  

십자가의 성 요한은

1675년 1월 25일 교황 클레멘스 10세에 의해 시복.

1726년 12월 27일 교황 베네딕도 13세에 의해 시성

1926년 8월 24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교회학자로 선포되었고

1952년 3월 21일 스페인 서정시인들의 주보로 선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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