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7일 사순 제 5주일 강론

+ 찬미 예수님

강론에 앞서 다음 이야기를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스페인 어느 수도원 성당 고해소 위에 달려 있는 십자가의 예수님은 오른팔이 축 늘어져 있다고 합니다. 그 사연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래전 이 고해소에 어느 신자가 와서 엄청난 죄를 고백하였는데, 이때 신부는 다른 죄는 다 용서할 수 있어도 그 죄만은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바로 그때 고해소 위에 걸려 있던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오른팔이 움직이면서 그 신자의 죄를 무조건 용서하라는 뜻으로 십자를 그었다고 합니다. 그후부터 이 십자가의 예수님 오른팔이 늘어져 있다고 합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 인간의 죄와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와 용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지상에 오시기 전에는 모든 것이 율법의 척도로 모든 것을 판단하였습니다. 따라서 그 당시 시민들은 수많은 율법 조항을 준수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러다 보니 율법의 핵심인 신명기 6장 5절에 나오는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하느님 사랑과 레위기 19장 18절에 나오는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이웃사랑을 잊고 율법의 외적인 준수에만 신경을 썼습니다. 따라서 율법을 지켰는 가? 지키지 않았는 가? 하는 이분적인 사고에서 이것이 죄다 아니다를 판단하는 모습을 오늘 복음에서도 여실히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간음한 여자를 데리고 와서 모세의 율법 조항에 빗대어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명령하였다고” 말하면서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고 물어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죄 없는 자부터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들은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항상 남의 잘못과 죄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가지면서 그들을 판단하려고 합니다. 마태오복음 7장 3절에 나오는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라는 말씀처럼 말이죠!

“죄”라고 하는 것은 항상 “과거형”입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는 누군가가 과거에 죄를 지었다고 해서 현재에도 미래에도 죄인이라고 못 박아 버리는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 안에는 자비와 용서라는 것은 없는 것이죠! 우리는 이러한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간음한 여자에게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이 말씀 안에서 우리들은 예수님의 자비와 용서의 메시지를 찾을 수 있습니다. 과거의 너가어떠한 죄를 지었는 지에 대해서 묻지도 않고 단죄도 하지 않겠다. 회개의 삶을 통해서 죄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라 라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우리는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억이라는 것이 없는 거 같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는 과거, 미래 모두가 현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는 그렇게 드러나기 때문에 굳이 기억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하느님께서 무언가 기억해야하고, 우리를 위해서 자비를 베풀 수 있도록 각성시켜드려야 하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그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모든 것이 당신 앞에서는 현재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미 우리가 청하기 이전에 벌써 늘 해오셨고, 지금도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선함과 자비를 베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독서의 말씀을 살펴보면, 제 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예전의 일들을 기억하지 말고, 옛날의 일들을 생각하지 마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 라고 하고 있고,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내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내달리고 있습니다.” 과거에 우리가 어떠한 죄를 지었어도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로 우리들을 용서해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이사야서 1장에 나오는 다음 말씀처럼 말이죠!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오라, 와서 나와 시비를 가리자. 너희 죄가 진홍같이 붉어도 눈과 같이 희어지며 너희 죄가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같이 되리라.”

형제여러분!

오늘날은 전문가가 존중받는 시대입니다. 하느님의 전문은 용서이십니다. 우리가 용서의 전문가인 하느님을 존중하고, 그분의 용서를 받으면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잘못한 이들을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평화의 기도’를 하신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용서의 도구가 되어 살아가도록 합시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