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 1독서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7,21ㄴ-28
21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나가 사는 민족들 사이에서 그들을 데려오고, 그들을 사방에서 모아다가, 그들의 땅으로 데려가겠다. 22 그들을 그 땅에서, 이스라엘의 산악 지방에서 한 민족으로 만들고, 한 임금이 그들 모두의 임금이 되게 하겠다. 그리하여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않고, 다시는 결코 두 왕국으로 갈라지지 않을 것이다.
23 그리고 그들이 다시는 자기들의 우상들과 혐오스러운 것들과 온갖 죄악으로 자신을 부정하게 만들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이 저지른 모든 배신에서 내가 그들을 구원하여 정결하게 해 주고 나면,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
24 나의 종 다윗이 그들을 다스리는 임금으로서, 그들 모두를 위한 유일한 목자가 될 것이다. 그들은 내 법규들을 따르고 내 규정들을 준수하여 지키면서, 25 내가 나의 종 야곱에게 준 땅, 너희 조상들이 살던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들만이 아니라 자자손손이 영원히 그곳에서 살며, 나의 종 다윗이 영원히 그들의 제후가 될 것이다.
26 나는 그들과 평화의 계약을 맺으리니, 그것이 그들과 맺는 영원한 계약이 될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복을 내리고 그들을 불어나게 하며, 나의 성전을 영원히 그들 가운데에 두겠다. 27 이렇게 나의 거처가 그들 사이에 있으면서,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28 나의 성전이 그들 한가운데에 영원히 있게 되면, 그제야 민족들은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ㅇ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45-56
그때에 45 마리아에게 갔다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본 유다인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46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바리사이들에게 가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알렸다.
47 그리하여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의회를 소집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저렇게 많은 표징을 일으키고 있으니,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48 저자를 그대로 내버려 두면 모두 그를 믿을 것이고, 또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의 이 거룩한 곳과 우리 민족을 짓밟고 말 것이오.”
49 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그해의 대사제인 카야파가 말하였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50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51 이 말은 카야파가 자기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해의 대사제로서 예언한 셈이다. 곧 예수님께서 민족을 위하여 돌아가시리라는 것과, 52 이 민족만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돌아가시리라는 것이다. 53 이렇게 하여 그날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54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유다인들 가운데로 드러나게 다니지 않으시고, 그곳을 떠나 광야에 가까운 고장의 에프라임이라는 고을에 가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머무르셨다.
55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많은 사람이 자신을 정결하게 하려고 파스카 축제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56 그들은 예수님을 찾다가 성전 안에 모여 서서 서로 말하였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가 축제를 지내러 오지 않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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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 5주간 토요일 미사 강론

 

+ 찬미 예수님

이제 사순 시기도 오늘이면 마지막이고, 내일 부터는 성주간에 들어갑니다. 거룩한 사순 시기 잘 보내고 계신가요? 이번 주 독서와 복음을 살펴보면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으로 몰아가면서 점점 극적인 크라이막스로 끌고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의회를 소집하여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지상에서 예수님께서 하셨던 일을 보면 복음을 선포하셨고, 병자들을 치유해주셨고, 가난이들과 함께 연대하면서 그들에게 생명의 빵을 전해준 좋은 일을 많이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율법학자들을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아이러니 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오늘 복음에서 나오듯이, 예수님을 그대로 내버려 두면 모두 그를 믿을 것이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민족을 짓밟고 말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여기에 악마의 유혹이 작용을 해서 그들은 죄 없으신 예수님을 죽이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죄없는 당신의 아들을 죽이려는 인간의 악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카야파의 입을 통해서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라는 이 저주스러운 말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가장 사랑하시는 아들을 이 지상에 파견한 목적으로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민족을 위하여 돌아가시리라는 대속적인 죽음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설립에 대해서 전망하고 있습니다.

 

내일부터 우리들은 성주간을 보내게 됩니다. 성주간의 모든 의식은 슬픔을 표현하나 동시에 하느님이 인간이 되시어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한 엄청난 사랑에 대한 기쁨의 태도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드리는 미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성찬 전례”입니다. 그 중에 거양성체때 신부들이 읊고 있는 부분을 유심히 경청해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에 대한 표현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표현이 있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내어 줄 내 몸이다”,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죄많은 우리 인간을 위하여 십자가 상의 죽음을 통해서 자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하느님께서 우리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면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결국 이천년 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설립되었고,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동참하기 위해서 수많은 이들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치는 순교의 삶을 사셨고, 자신의 온 생애를 바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성인 성녀들이 지금까지 생겨나고 있습니다. 오늘 강의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소개한 성녀 에디트 슈타인 역시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에서의 완전한 희생에 의하여 인류의 죄가 사함을 받은 것처럼 자기 자신의 목숨을 유대 민족과 전인류를 위한 제물로 바치리라 다짐하게 된 것입니다. 마치 구약성경에 나오는 유대인의 전멸 위기를 위한 다음의 에스델의 기도처럼 말이죠!

 

“나의 생명은 지금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가정에서 이렇게 배웠습니다. 주님, 당신은 모든 민족 중에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모든 민족의 선조들 중에서 우리 선조들을 뽑으시어, 영원히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약속하신 대로 우리 선조들을 보살펴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당신에게 죄를 지었으므로 당신께서 우리를 원수들에게 넘기셨습니다. 만물을 제압하는 힘을 가지신 하느님, 절망에 빠진 자들의 소리를 들으시고 악인들의 손에서 우리를 구하시고 나를 공포에서 구하소서!(에스 4,14-19)

 

따라서 에디트 슈타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고통받고,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에 참여하라 하시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 역시 주님에게 결합돼 있다면, 그리스도 신비체의 일원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는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 속에 사시고 그 사람들 속에서 함께 고통을 나눠 가지고 계십니다. 주님과 일치해서 받아들이는 그 고통은 그리스도의 고통이 되어 그 위대하신 구원의 역사에 참여하게 되고 결실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우리의 영성생활의 기본원칙이라고 생각합니다.

에디트 슈타인은 자기의 삶과 죽음이 그리스도의 신비체, 전세계의 사람들과 결합되기를 소망하였습니다. 이러한 그녀의 가르멜 삶은 자신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 이 세상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악의 신비, 암흑, 절망의 그 한복판으로 스스로 들어감으로써 그 고통을 몸에 받고 찢기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절망 한가운데에서 조차 존재하는 희망, 하느님의 부재 그 중에도 존재하시는 주님을 찾고 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들은 서원의 삶을 통해서 하느님과 공동체에 공적으로 정결, 청빈, 순명을 선서하고 있습니다. 이 서원의 삶의 핵심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에 참여하는 것이고, 이 서원의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더욱 더 깊은 친교 안에서 우리 영혼 안에 계시는 하느님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굳은 의지적인 결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에디트 슈타인의 소품 중에서 『어린양의 혼인』이라고 하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에디트 슈타인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수녀들에게 3대 서원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3대 서원은 십자가에 못을 박는 것이고, 이것은 보다 자발적으로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내밀어야 하고, 망치로 내리치는 것을 인내해야 하며, 보다 깊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와 실제적으로 하나가 되는 체험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막바지에 이른 사순 시기에 우리의 서원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면서 보다 더 자발적으로 서원의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깊은 친교를 이루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