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10주일 강론



+ 찬미예수님!

오늘 제 1독서와 복음에서는 과부가 등장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성경 안에서 “과부”는 일반적으로 대부분 재산 없이 어린 자녀를 데리고 있거나, 가난하고 외롭게 살아가는 젊은 여인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과부는 고아와 이방인과 함께 사회의 하층 계급, 빈곤층을 이뤘습니다. 그래서 과부는 공동체가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과부를 돌보는 것은 하느님 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이런 점에서 자신들이 믿는 하느님과 이민족들의 신들이 다르다고 인식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그분께서는 고아와 과부의 권리를 되찾아 주시고, 이방인을 사랑하시어 그에게 음식과 옷을 주시는 분이시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독서에서 보면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선택한 사람인 엘리야와 당신의 아들 예수를 과부에게 보내어서 당신이 어떠한 분이신 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제2독서에서도 주님께서는 하느님의 교회를 박해하며 아예 없애 버릴려고 했던 철저한 유대교 신봉자였던 바오로를 선택해서 이방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도록 그분을 바오로 안에 계시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당시 가장 소외받고 가난한 이들에게 당신이 선택한 사람들을 파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당신을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성경 안에서 잘 살펴보면 하느님께 빚진 사람들은 도저히 그 빚을 갚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당신을 계시하는 모습들이 많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18장에 나오는 무자비한 종의 비유에서 만달란트를 빚진 이에게 빚을 탕감해주시는 분, 탕자의 비유에서 자비하신 아버지의 모습 등. 그것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향한 무한한 자비의 사랑 표현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우리는 자비의 빈곤 속에 피폐해진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생태 신학자인 매튜 폭스는 현대에서 자비는 유배되고, 망각되고, 억압되고 있음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주 안에 살고 있는 모든 피조물이 그렇듯이, 우리도 고통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피조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비의 유배를 묵인함으로써 풍성한 자연과 인간 본성을 잃어가고 있다. 모든 개인은 적어도 잠재적으로는 자비를 지니고 있다. 오늘날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유배된 자비의 희생자라는 사실이다. 개인과 집단을 막론하고 모두가 희생자다. 우리는 모두 희생자이며 자비가 없어서 죽어가고 있다."

오늘 말씀에서 자비를 입어서 하느님께 선택 받은 예언자 엘리야, 사도 바오로, 예수 그리스도 처럼, 우리도 세례를 통해서 하느님께 선택받은 이들입니다. 우리가 받은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와 사랑을 피폐해진 현대 사회에 안에서 전해야할 의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물질만능 주의 피해자로서 희망없이 살아가는 이들과 연대해서 하느님의 무한하신 자비와 사랑,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을 전해준다면, 루카복음 14장에서 예수님께서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라는 말씀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결국은 하느님께서 죄 많은 인간에게 주신 세 가지의 사랑의 무상성을 잘 상기하면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첫째는 우리를 지으신 사랑의 무상성, 둘째는 우리를 하느님화 (神化)하시려는 사랑의 무상성, 셋째는 우리를 용서하시는, 즉 우리가 죄로 인해 끊임없이 잃어버리는 것을 끊임없이 다시 주시는 사랑의 무상성을 말이죠!

이러한 하느님의 무상성을 상기하면서 살아간다면, 우리가 이웃들에 베푸는 사랑의 크기는 우리가 받은 하느님의 사랑에 비하면 항상 작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거나 사랑의 실천함에 있어서도 오늘 독서에서 예언자 엘리야와 사도 바오로처럼 그들이 주인공이 아니라 자신들을 파견하신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께 그 공로를 돌릴 수 있는 겸손함을 또한 배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의지적인 사랑 행위를 통해서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 과부와 군중들의 입에서 전해주고 있는 것이 실현될 것입니다. “어르신 입으로 전하신 주님의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 오셨다.”

형제 여러분!

하느님의 사랑의 무상성과 자비하심을 항상 상기하면서 살아가도록 노력합시다. 그때에 우리들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하느님의 사랑이 실현이 될 것입니다. 그러할 때에야 비로소 우리들이 전하는 말씀과 이웃들을 향한 사랑의 행위에 힘이 생겨날 것입니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