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9일 강진 성 요셉 여고 미사 강론


+ 찬미예수님!

안녕하세요! 이제 무더위를 알리는 장맛비가 시원스럽게 내리고 있습니다. 더위와 습기 때문에 불쾌지수가 요즈음 많이 올라가고 있죠! 어떤 한 친구의 불쾌지수가 높을 때 자신의 뇌 구조를 한번 그려보았다고 합니다. 제일 비중이 많은 것인 “왕짜증! 건드리기만 해봐”, “화 (오냐 잘걸렸다! 너냐?)”, 더워, 끈적끈적해, 잠이나 자자 등등이었다고 합니다. 불쾌지수가 높은 날에는 경찰서에 접수되는 사건사고 중 50%가 넘는 수가 일시적인 감정에 의한 것이라는 통계자료가 보여 주듯이 많은 수가 짜증을 느끼는 덥고 습한 요즈음에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오늘은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자선의 올바른 의미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에 위선자로 대표되는 율법학자들이 해왔던 것을 지적을 하면서 하느님께서 친히 좋아하시는 자선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즉 율법학자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하는 자선과 기도, 단식을 해왔죠!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자선과 기도와 단식 자체는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인간의 선행 행위들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만족이나 자신을 남에게 드러내 보이려는 “자만심”이 그들의 눈을 가리우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자선과 기도, 단식”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오늘 복음 말씀에 나온 것처럼 사람들에 눈에 띄지 않는 애덕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속한 가르멜 수도회 성인 성녀들이 많이 계시는 데요 그 중에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소화 데레사” 성녀가 계십니다. 그 성녀는 영적 작은 길을 걸으면서 자신을 ‘작은 모래알’로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 성녀가 해왔던 온갖 애덕 행위들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오로지 예수님만이 보실 수 있는 작은 모래알로 남아 있도록 소화데레사는 바랬습니다.


오늘날 물질만능주의와 개인주의가 팽배한 현대사회에서 물질이 넘쳐나지만 우리들의 마음은 아주 빈곤하죠! 옛날 노래 제목 중에 “풍요속의 빈곤”이 생각납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전해주는 소식들도 많이 있습니다. 요즈음 세대의 사람들은 재능이 참으로 많습니다.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는 새로운 기부문화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엠마우스’라는 빈민구호 공동체를 만들어 평생을 집 없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한 삶을 보여주었던 피에르 신부님은 재능나눔은 타인과 함께 행복하고자 하는 사랑의 구체적 실천이라고 말씀하면서 다음의 말로 우리 가슴을 울리고 있습니다. “사랑 가운데 있지 않는 믿음은 불 꺼진 등대와 같다.”

요즈음 연예인들 중에서도 기부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예전 지누션이라는 그룹에서 활동했던 “션” 이라는 가수가 있습니다. 그는 기부 문화에 대한 강연에서 “나눔에 있어 크고 작음은 없다고 생각한다”며 “황금, 소금보다 귀중한 지금의 가치를 알고 작은 것부터 나눔을 실천해야 한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학생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 지 한 번 생각해봅시다. 혹시 오늘 복음에서 위선자들의 모습처럼 우리 자신을 드러내고, 우리들의 만족을 위해서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거기에는 남들보다 내가 더 잘낫고, 우월하다는 그런 자만심이 들어있을 것입니다. 그 안에는 남들을 생각하는 자선과 사랑이 없을 것입니다. 비록 가진 것은 적지만 우리들의 가진 작은 것을 옆에 동료 친구들과 주변 이웃들에게 나눔을 실천한다면 좀더 풍요로운 학창시절의 추억을 만들고, 삶의 소중한 가치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