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5일 우리 사모 예수의 성녀 데레사 대축일 미사 강론


+ 찬미예수님

오늘 우리는 예수의 성녀 데레사 대축일 미사를 함께 봉헌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의 성녀 데레사 탄생 500주년 기념을 각 공동체 별 개인별로 준비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다시금 맨발 가르멜의 유대 안에 살아가고 있는 수도회, 수녀회, 재속회, 신심회 회원들이 데레사적인 카리스마를 새롭게 자리 매김하고 교회 안에서 우리 회의 모습을 명백하게 정의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모 성녀 예수의 데레사와 함께 “본질로 돌아갈”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데레사적 카리스마의 본질적인 것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성녀 예수의 데레사의 체험과 가르침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성녀 자신의 체험은 교회 안에서 우리 성소의 정체성에 대한 근원이 됩니다. 성녀의 체험은 하느님 중심적이고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에 의해 “사로잡혔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녀의 의식 세계는 온전히 하느님으로 채워졌고 강렬하고 생생하게 그리스도의 인성과 교제하면서 자신이 내적인 삼위일체의 관계 속으로 젖어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여정은 성녀가 살았던 방식으로 표현되고 나중에 성녀가 가르친 것은 우정이라고 말하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묵상 기도에 대한 정의는 자서전 8장 5절에서 성녀가 말하고 있죠! “나는 묵상기도란 자기가 하느님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그 하느님과 단 둘이서 자주 이야기하면서 사귀는 친밀한 우정의 나눔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기도는 성녀가 하느님을 체험한 최상의 “방법”이고 “장소”입니다. 이미 하느님과의 충만한 합일 가운데 있으면서도 성녀는 창립사 5장 8절에서 “주님께서는 냄비와 팬 가운데서도 거닐으십니다라고 말하면서 하느님께서는 많은 방법을 통해서 당신을 드러내고 있으며, 그분은 우리가 어떤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을 때만 당신을 나타내 보이시는 분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녀의 영적 메시지의 핵심이며 축입니다. 우정으로 이해되는 기도는 전 생애에 걸쳐 나타납니다. 성녀 데레사는 기도에 대해서 가르칠 때 “기도에 길에 들어 선 사람들에게 필요한 세 가지 ” 즉 사랑과 이탈과 참다운 겸손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이러한 접근에 의해 성녀는 “공동체 생활”에 대해서도 가르치며 이것은 성녀의 체험과 가르침 중에서 또 하나의 본질적인 것입니다. 성녀는 『완덕의 길』전반에서 “공동체 생활”에 대해서 말하고 있죠! “그리스도의 공동체”, 우리를 이곳으로 함께 이끌어“ 주신 분은 주님이시다, 우리를 한데 모아 주신 분을 위한 공동체, 우리 자신을 모두 그분에게 드리기 위한 공동체, 우리 자신을 전부이신 분에게 남김없이 온전히 드리는 것, 그분은 우리를 서로 서로 엮어서 우리를 한 가족이 되게 하신다고 성녀는 말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살아 있는 책”인 그리스도께 대한 우정에 중점을 둔 성녀의 기도에서 성녀 데레사는 하느님과 우리 자신의 속성에 대한 “진리들”과 우리 자신이 그분과 “일치해 가야할” 소명을 깨달았습니다. 자서전 26장 5절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그 당시 종교재판소에 의해서 성녀가 읽고 있었던 자국어로 된 많은 신심서적을 읽지 못하게 되었을 때, 성녀는 많이 슬퍼했습니다. 그 때 주님은 “그 일을 슬퍼하지 말라. 내가 살아 있는 책을 주마” 라고 하셨죠!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이 결합된다는” 과도한 도전을 일으키는 바로 이 점에서 데레사적 휴머니즘이 흘러나온 다는 것이 강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내용이 『영혼의 성』육 궁방 7장 9절에서 나옵니다. “칠 궁방으로 들게 하신 영혼은 우리 주 그리스도와 함께 살면서 당신을 떠나는 일이 거의 없고 그리하여 당신의 천주성과 인성이 항상 그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 스리스도의 친구이며 정배로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을 교회와 세상에 줄 하나의 선물로 만들어 나가야합니다. 어떤 순간적인 것으로 축소되지 않는 것은 사랑이고 이 사랑은 우리를 우리 자신 안에 가두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성녀 데레사는 수하 수녀들에게 가르치면서 “자신을 영혼들의 선익과 교회의 확장을 위해 헌신하라고 하셨고”, “주님을 진심으로 알고, 진심을 다하여 사랑하는 자의 사랑이여 그들 자신이 하나의 선물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성화되는 것은 자신의 선물이 아니라 사람이 성화되는 것은 자신을 주는데 있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예수의 성녀 데레사 탄생 500주년 기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성녀 데레사 탄생 500주년의 슬로건이 무엇인가요? 예 맞습니다. “저는 당신을 위해 태어났습니다.” 죠!

‘저는 당신을 위해 태어났습니다’라는 제목은 성녀 데레사의 깊은 열망을 표현하려는 것입니다. 결국, 그것은 500년 전 성녀가 탄생했을 때 하느님과 맺은 나-당신의 관계를 환기시킵니다. 이 슬로건은 하느님의 현존과 기도, 창조의 보편적인 운명에 대해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하느님을 위해 생겨났다. 따라서 “저는 당신을 위해 태어났습니다”는 또한 모든 가르멜인들, 하느님께 봉헌된 모든 이들 그리고 모든 인간들의 성소에 대한 표현입니다. 그것은 각자의 이웃에 대한 가장 관대한 사랑을 표현한다고 할 수 있죠! 즉, 저는 당신의 사랑스런 종입니다. 우리는 복음적이고 데레사적 형제애의 소명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봉사하도록 불림을 받았습니다. 짧게 말하면, 이 슬로건은 예수의 데레사가 체험한 인간적이고 영적인 여정에 참여하는 초대를 의미합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 안에서 성녀의 정신이 되살아나고 그녀의 작품들 속에 흐르는 지혜가 우리에게 스며들어야 합니다. 또한 이런 방법으로 교회와 세상에 봉사하는 데레사적 카리스마에 따라 우리 삶에 새로운 자극이 되어야 합니다.

끝으로 “나는 당신을 위해 태어났습니다.” 라는 슬로건의 원천인 성녀 데레사의 시를 소개하면서 강론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제 목 : 하느님의 손길 안에서


나는 당신의 것, 당신으로부터 태어났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나이까?

위엄있으신 주권자이시고,

영원한 지혜이시고,

나의 영혼을 기쁘게 돌보시는 이여!

숭고하신 하느님, 선 자체이신 분이시여,

참으로 무가치한 이 영혼을 보십시오.

당신에게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나이까?

당신의 것, 당신은 나를 창조하셨습니다.

당신의 것, 당신은 나를 구하셨습니다.

당신의 것, 당신은 나를 인내하셨습니다.

당신의 것, 당신은 나를 부르셨습니다.

당신의 것, 당신은 나를 기다리셨습니다.

당신의 것, 당신은 나를 떨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나이까?

좋으신 하느님, 당신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나이까?

이 비참한 영혼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 영혼이 무슨 일을 해야 하고,

이 죄많은 노예같은 영혼이 무엇을 해야 합니까?

나를 보세요, 감미로운 사랑이시여,

감미로운 사랑이시여, 나를 보세요,

당신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나이까?

당신 손길안에

나는 당신의 마음에 둡니다.


육체, 생명 그리고 영혼을,

나의 깊은 감동들과 애정어림으로,

배우자 -- 감미로운 구세주여,

나 자신을 당신에게 지금 드립니다.

당신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나이까?

나에게 죽음이나 생명을 주시는 이여,

건강이나 병,

명예나 수치,

전쟁 이나 평화,

나약함이나 아주 강함

그래요, 나는 이것들을 말합니다,


당신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나이까?

나에게 부(富)나 가난을 주시든지,

기쁨이나 슬픔을 주시든지,

행복이나 우울함을 주시든지,

천국이나 지옥을 주시든지,

감미로운 삶이나, 햇빛에 정체가 완전히 드러나는 삶(?)을 주시든지,

나는 모든 것을 당신에게 드립니다.


당신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나이까?

만일 당신의 뜻이 기도하는 사람(?)이라면 나에게 주옵소서! ;

나를 무미건조하게 알기를 허락하시든지,

헌신(애정)으로부터의 풍부함을 허락하시든지.

만약에 그렇지 않으시다면, 메마름을 주옵소서.

위엄있는 주권자이신 당신안에서만,

나는 나의 평화를 발견합니다.


당신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나이까?

지혜로움을 나에게 주소서!

사랑을 위해서든지, 무지함을 위해서든지,

풍년들을 주시거나,

배고품과 기근을.

암흑이나 햇빛을,

나를 여기로나 저기로 움직이시는 이여,


당신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나이까?

만약에 당신이 나에게 휴식을 원하신다면,

나는 사랑을 위해서 그것을 갈망합니다.

만약에 노동을 원하신다면,

나는 일하다가 죽을 것입니다.

달콤한 사랑이시여 말해다오.

어디로, 어떻게 그리고 언제.


당신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나이까?

갈바리아 나 타볼을 나에게 주옵소서,

사막이나 풍성한 나라,

고통안에 있는 욥으로써

당신의 가슴품에 있는 요한을.

불모지나 풍성한 포도나무

무엇이든지 당신의 뜻대로.


당신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나이까?

나를 묶여있는 요셉으로,

에집트의 통치자로써,

고통당하는 다윗

드높은 지위자로써,

물에 빠진 요나

자유로운 요나로써


당신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나이까?

침묵이나 말하는 것,

풍요로운 땅 이나 불모지

율법에 의해서 나타난 나의 상처들,

부드러운 복음말씀 안에서 기쁨을,

슬픔이나 기쁨을,

당신은 내 안에서 홀로

당신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나이까?

나는 당신의 것, 나는 당신을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나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