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레사적 카리스마의 기원과 발전(2)







2. 성녀 데레사 카리스마의 시대적 상황

지금까지 살펴본 가르멜 카리스마 원천과 복음, 원회규와 회헌 등은 과거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것들은 앞으로의 서언에 불구하다. 이제부터 성녀가 그 당시 자신이 살았던 시점을 기준으로 해서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내다보고 정당한 것에 대해서 알아볼 것이다.

어떤 수도회이든 그 당시 사회적인 필요성에 의해 창립이 된다. 예를 들자면 수도회를 창립할 때에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신자들, 그 당시 사회문제를 해결할 지를 고민한다. 먼저 글을 읽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문맹을 없애기 위해서 교육을 실시한다. 그래서 수도회에서 학교를 짓고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병자들을 돌보는 시설을 마련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슬람교도에게 박해를 당하고 감옥에 갖힌 사람들을 구해주고, 그 사람들을 돕기위해 세운 수도회도 여러 개 있다. 다시 말하자면 그 당시 카리스마 영성을 갖고 있는 몇 몇 지도자들은 이러한 사회적인 필요성을 보고 이웃을 돕기 위한 수도회를 조직해서 창설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성녀 데레사가 창립한 개혁 가르멜 수도회야 말로 16세기 스페인이 처해있는 구체적인 상황에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창립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부터 그 당시 예수의 성녀 데레사가 살았던 유럽 상황과 스페인의 모든 정치적인 배경을 아우르면서, 데레사 카리스마가 그 시대적 상황에 어떻게 부흥을 했는 지에 대해서 살펴볼 것이다.


(1) 강생 수녀원

강생 수녀원은 성녀가 개혁 가르멜 수도원을 창립하는 데 단초가 된다. 그리고 강생 수녀원과 개혁 가르멜 수도원은 대조적인 구도를 이룬다. 우선 성녀 데레사가 수도원을 창립하는 있어서 어떠한 단계를 거쳐서 변화되었는 지를 살펴본다. 첫째는 숫자적인 변화이다. 성녀가 강생 수녀원에 살았을 때 200 ~ 280명의 수녀가 살았다. 그리고 성녀가 성 요셉 수녀원을 창립하면서 그 인원수를 13명으로 줄여서 작은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 이후 인원은 14명, 21명으로 늘어난다.

둘째는 봉쇄 수녀원에 관한 것이다. 공식적인 회헌에 봉쇄 수녀원이라는 조항이 있어서 그렇게 운영되어야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회헌을 철저히 따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인 사실을 볼 때 회헌이나 회규만으로만 봐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은 언제나 법에 따라서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도원 역사를 볼 때 다른 중요한 문헌 역시 우리 수도회 전통을 해석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회헌이나 회규 이외의 우리가 중요하게 역사적인 사실을 알 수 있는 문헌인 루베오 총장 신부님이 쓴 메모 기록에서 볼 수 있다. 그는 강생 수녀원을 방문하면서 수녀원의 어려움과 수녀원의 내부적인 문제점을 듣고 기록을 하였다. 그 기록 내용은 현재 스페인에 출판되어 있다. 그리고 어떤 강생 수녀원 수녀가 직접 그 내용을 적어 출판한 기록도 있다.

강생 수녀원의 그 당시 삶은 이러하였다. 예를 들어서 사모님이 살았던 강생 수녀원에는 “데레사 데 아우메다”라는 수녀가 있었는 데, 그녀는 2층 구조로 된 수방에 살고 있었다. 거기에는 그 수녀만이 살고 있었는 것이 아니라, 여동생과 조카까지 함께 살았다. 따라서 강생 수녀원은 그 당시 결혼을 하지 않은 여인들의 도피처 처럼 사용되고 있었다. 이상하게 들릴 지 모르겠지만 데레사 데 아우메다 수녀가 수녀원을 나가고, 함께 살았던 조카가 봉쇄 수녀원의 수녀가 되었다.


(2) 유럽의 상황 (16세기)

① 루터 종교 개혁

1517년 당시 유럽의 상황은 성녀 데레사 개혁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요인이었다. 루터의 종교 개혁 운동은 그 당시 로마 교황청에 대항하여 유럽 전역에 일어났다. 루터교가 주창하는 교리는 단지 새로운 신학과 이론에 불구하였다. 그 당시 루터의 종교 개혁을 『완덕의 길』3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 나는 엄청난 악(루터의 종교 개혁)을 눈앞에 바라보며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막아낼 수 없게 퍼져나가는 불길을 보고 있었습니다. 날로 번지기만 하는 그 무서운 악을 할 수만 있다면 무력 으로라도 막으려고 하는 것을 보고 나는 전쟁 때처럼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성녀 데레사가 개혁을 시작할 때에는 로마 교황청를 대항하여 루터교가 확장되고

종교 개혁 운동이 유럽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을 때였다. 성녀 데레사는 1561~1562년 사이에 유럽이 처한 현실을 실제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그 당시 유럽의 역사적인 상황은 성녀가 『완덕의 길』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16세기 유럽의 개혁, 성녀 데레사의 가르멜 개혁에 상당히 중요한 단초가 되기 때문이다. 성녀는 이단을 말할 때 “깨진 거울과 같다” 라고 말하고, 죄인들은 “거울을 천으로 덮어 놓은 것”과 같다고 말한다. 이처럼 유럽에서는 16세기 교회가 분열되는 상황을 맞이하였다. 교회가 어떻게 분열하였는 지, 루터 종교 개혁 운동이 어떠하였는지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만 성녀 데레사가 이끈 “개혁” 이라는 큰 사업의 중심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성녀는 교회를 지키고 신자들을 지키기 위해서 기도 단체를 이끌어야 했고 기도가 끊이지 않게 하여야 했다.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그 당시 왜 꼭 개혁을 해야만 했을 까? 그러한 기도를 계속 이어가는 남·녀 수도회를 만들어야 했는 이유는 무엇이고, 이 수도회의 최종적인 목적이 무엇이며, 1562년 가르멜 여자 수도회, 1568년 가르멜 남자 수도회을 창립한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결국 보편적인 교회를 위해 이 모든 개혁이 어떠한 지향점을 갖고 있는 지에 대해서 우리들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성녀 데레사가 어떻게 남·녀 가르멜 수도회 개혁을 시작했는 지에 대한 기원과 사명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성녀는 우리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사명은 분명하다. 남·녀 가르멜 수도회 모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단 하나였다. 우리의 삶의 방식은 기도로 이루어져야 하고 수덕적이고 관상적인 삶의 형태를 고수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교회를 도울 수 있고 보편적인 교회에서 우리의 기도와 가르멜 정신을 이어갈 수 있다.

② 스페인 상황

데레사가 살았던 스페인 상황은 혼란의 혼란을 거듭했다. 이단과의 갈등은 끊이지 않았고 루터와 칼뱅파가 생겨났고 종교 전반적으로 분열이 시시각각으로 일어났다. 즉 그것은 전쟁으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영적 투쟁을 부르짖다가 종국에 가서는 물질적인 투쟁으로 이어져 무기를 동원해 전쟁까지 불사하였다. 성녀 데레사는 이단을 처단하기 위해서 전쟁을 상당히 반대하였다. 스페인 필립 2세 왕이 내세운 종교적인 신념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성녀는 이단을 배척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하였다. 무기를 사용할 것이 아니라 성스러운 삶을 통해서 그들을 교화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였다. 성녀는 그 당시 정황을 빌어 이러한 사실도 덧붙였다. 필립 2세 왕이 계획하고 있는 전쟁은 무기와 군대를 앞세우는 물리적이고 폭력적인 계획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완덕의 길』에 성녀는 잠깐 언급하였지만,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필립 2세 왕은 마치 성녀가 자신의 정치적인 목표를 방해하고 반대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③ 지옥에 환시

개혁 가르멜을 이끌게 된 성녀 데레사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은 성 요셉 수도원에서 “지옥에 환시”를 보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자서전』32장에 언급되어 있다. 성녀가 본 이 환시는 신학적인 측면이 아니라 지옥에 대한 어떠한 형상이다. 따라서 성녀는 지옥을 대변하는 불과 악마 등과 같은 어떠한 형상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신학적인 내용은 아니다. 성녀는 자서전 32장 지옥에 대한 환시를 언급하면서, 지옥에는 상당히 많은 루터파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성녀는 단순한 이 지옥에 대한 환시를 왜 이렇게 생생하게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것일까요? 중요한 것은 지옥의 겉모습이 아니다. 성녀는 지옥의 환시를 보고 지금 자신의 자리를 모두 내려놓고 불쌍한 영혼을 구제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된다. 성녀 데레사는 지옥의 환시를 보고 난 후에 사도적 열정에 점차 불타올랐다. 따라서 성녀는 그곳에 있는 가여운 인간의 영혼을 구원해야 겠다는 책임감이 생겼다. 이것은 새로운 사도적 사명과 영혼 구원을 의미하는 데, 성녀는 그것을 위해서는 교회를 통해 자신의 삶을 온전히 내어주고 불쌍한 영혼을 구원해야 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사도적 열정으로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성녀 데레사가 결심한 가장 큰 요인들이다. 성녀는 환시를 통해서 지옥만을 본 것이 아니라 환시를 통해서 자신의 삶을 교회에 봉헌하고 현대적인 복음화를 통해 일반 대중에게 전해야 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이처럼 영혼을 구원하고 사도적 활동을 하고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성녀 데레사의 사명은 성 요셉 수도원 창립에 큰 계기에 된다. 영혼을 구원하고 사도적 활동과 더불어 교회의 적극적으로 헌신하는 것은 성녀의 환시를 통한 사명을 말한다. 그 사명은 직접 실현으로 이루어진다.

성녀 데레사의 지옥 현시 체험은 교의 신학적 차원이나 성녀의 특별한 계시로 이해하기는 어렵고 그 당시 대중 신심에서 통용되는 지옥에 대한 통상적인 관념에서 봐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 체험에서 보아야 하는 것은 지옥 현시를 통해서 성녀에게서 드러나는 사도적인 결실· 효과들이다. 성녀는 그 당시 단죄되고 있는 사람들, 이단들, 죽어가는 영혼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사도적인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의 신학적인 전망에서 볼 때,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Extra ecclesiam nulla salus)는 관념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신학적인 전망과는 다르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전망은 교부시대 성 치프리아노 이후부터 가톨릭 교회가 고수했던 구원에 관한 기준이었다. 그 당시 고전적인 전망이지 오늘날은 다르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망에서 성녀의 자서전 32장에서 지옥에 대한 생생한 여러 모습이 서술되고 있는 데, 그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신학적인 전망, 대중 신심에 전망 안에서 이것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것으로 인해서 성녀가 갖게 되는 영혼 구원을 위한 사도적 열정에 우리들은 집중해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성녀 데레사의 지옥 현시 체험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성녀는 이 체험을 통해서 엄청난 큰 은총을 받았다. 여기서 우리가 봐야 하는 것은 성녀 데레사의 지옥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아니라, 지옥 현시 체험을 통해서 성녀에게 야기된 결과를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성녀는 이 체험을 통해서 영혼 구원과 사도직 위해서 자신을 온전히 투신하고자 하는 열망을 갖게 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성녀는 지옥 현시를 자서전 32장 4절에서 언급하면서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푼 큰 은혜라고 말하고 있다. 이 은혜라고 하는 것은 성녀가 기술적으로 하느님에 대한 신비 체험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사용한 독특한 용어이다. 성녀 데레사가 지옥 현시 체험을 제시한 본문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객관적이고 교의적인 개념으로 보지 말고, 성녀에게 드러난 큰 효과를 보아야 한다. 이것으로 인해서 성녀가 큰 열정을 갖고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서 자신을 온전히 투신하고자 하는 열정을 크게 갖게 되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성녀 데레사의 지옥에 관한 현시를 이해하기 위해서 성녀의 작품을 한 구절 한 구절 천천히 읽어 나가야 한다.

④ 신대륙 발견

신대륙 발견은 성녀로 하여금 영혼 구원을 위해서 보다 더 큰 사도적 열정을 갖게 하였다. 성녀는 신대륙의 발견으로 거기에 죽어가는 영혼들을 향한 구원 열정을 품게 되었다. 성녀 데레사는 1567년 당시 신대륙 소식을 프란치스코 수도회 말도라도 선교사 신부님을 통해서 듣게 된다. 성녀는 이 신부님을 통해서 신대륙에서 하느님을 모른 채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신대륙의 원주민을 동물과 같이 험하게 다룬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서 안타까워 하였다. 성녀가 이러한 신대륙의 상황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상당히 나중이었다. 1562년 성녀가 첫 번째 개혁 가르멜 수녀원인 성 요셉 수녀원을 창립할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것은 그 당시 유럽 전역을 지배하고 있었던 종교 개혁 운동으로 교회의 위기였다. 1567년에 신대륙 상황을 접하면서 2번째 맨발 가르멜 수녀원인 메디나 데 캄포 수녀원의 창립을 하게 된다. 성녀가 그 이후에 창립을 확산하게 된 이유는 무엇보다도 신대륙에서 죽어가는 영혼들을 위한 사도적 열정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성녀 데레사는 그 당시 신대륙에 가는 모든 이들이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고 확산하기 위한 선교사로 착각하였다. 그 이후에 말도라도 신부님으로부터 신대륙의 상황을 들으면서 신대륙에 가는 사람들이 모두 다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원주민들을 착취하고 부를 취하러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신부님과의 만남을 통해 부분적으로 밖에 알 수 없었지만, 그런 어려운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발견은 성녀 입장에서는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성녀 데레사는 신대륙에 가는 모든 이들이 하느님 나라를 확장하고 선포하러 가는 줄 알았는 데, 그 모든 상황을 말도라도 신부님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성녀의 형제들이 모두 신대륙에 가서 하느님 나라 선포를 하는 줄만 알았지만, 이 신부님과의 만남을 통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성녀는 그들 역시 신대륙에 가서 원주민을 착취하고 부를 끌어내어 스페인에 돌아왔다는 진실을 알게 되어 고통스러웠다.

성녀 데레사는 지옥 현시 체험, 신대륙 발견에 대한 역사적인 진실을 깨달음을 통해서 무엇보다도 영혼 구원을 위한 열정을 불태우게 되었고, 영혼 구원을 위해서 자신을 모두 내어 놓고자 하는 큰 내적인 열정을 갖게 되었다. 남·녀 맨발 가르멜 수도회가 무엇보다도 교회를 위해서, 교회 확장을 위한 선교를 위해서 투신해야 한다는 자신의 카리스마를 우리 수도회에 포함시키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가 봐야하는 중요한 것은 1567년 이라는 시기이다. 왜 중요한 가 하면 이 시기에 성녀는 말도라도 신부님과 만남을 통해서 신대륙 발견에서 자행되고 있는 상황을 듣게 된다. 이때부터 성녀 데레사는 자신의 선교적인 열정을 불태우게 되고, 이것을 통해 가르멜 수도회를 확장하게 되는 전환점이 되었다. 1567년에 메디나 데 캄포에 2번째 맨발 가르멜 수녀원을 창립하였고, 그 다음 해에 남자 가르멜 수도회를 창립하게 되었다. 성 요셉 수녀원 뿐만 아니라 많은 수녀원을 창립하면서 성녀의 선교적인 열정은 창립활동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그래서 이러한 선상에서 성녀 데레사는 교회를 위해서 남·녀 가르멜 수도회를 창립하게 된다. 남·여 가르멜 수도회의 하나의 사명은 교회에 봉사하는 것이다. 이것이 근본적으로 맨발 가르멜 수도회의 성소이다. 여자 가르멜 수도회는 관상생활, 기도생활, 하느님에 대한 관상, 거룩한 삶, 수덕적인 삶을 통해서 교회에 대한 봉사를 구현한다고 한다면, 남자 가르멜 수도회는 교회를 봉사하는 같은 사명을 갖고 있지만, 보다 더 사도적이고 활동적인 차원을 통해서 교회에 대한 봉사를 구현한다.

성녀는 자신의 카리스마의 이상을 가르멜 공동체 삶에 적용하는데, 여자 수도회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여자이면서 남자 수도회를 창립한 첫 번째 분이다. 우리 수도회 역사에서 특히, 남자 가르멜 수도회에서 여성을 창립자로 모신 것에 대한 사실이 역사적으로 문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