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레사적 카리스마의 기원과 발전(4)






2장. 개혁 가르멜 남·녀 수도회 일상적인 삶



개혁 가르멜 남·녀 수도자들은 어떠한 삶을 영위했는 가? 우리들은 당시 개혁 가르멜 남·녀 수도회에서 어떻게 살았는 지 성녀의 작품을 통해서 살펴보도록 한다. 이 주제에 앞서 성녀 데레사가 개혁 가르멜 수도원을 창립하는 데 있어서 하느님께서 개입한 일련한 사건들이 있는 데, 사모님은 하느님께서 개입에 대해서 어떠한 태도를 견재 하였는 지에 대한 주제를 보도록 한다.

우리 수도회 창립의 역사가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 단순히 인간적인 논리로 해명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무엇보다도 성령을 통해서 하느님의 업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우리 수도회의 창립을 보아야지만 구체적인 전개 과정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 역사 신학은 하느님 섭리를 바탕으로 인간의 역사를 새롭게 재해석하고 읽어나가는 작업이다. 신앙만이 하느님 섭리를 바탕으로 역사를 재해석할 수 있는 눈을 갖게 된다. 이것이 우리 수도회 초창기 창립 역사를 바라볼 때 가져야 할 관점이다.

신앙이 없는 무신론자들은 하느님의 섭리, 개입을 통해서 성녀 데레사의 창립이 이루어 졌다고 보지 않는다. 그러한 이들은 성녀 데레사의 창립을 성녀 개인의 자연 본성적인 능력, 여러 가지 우연적인 사건들, 성녀의 인간적인 업적으로만 바라본다. 하지만 우리 수도회의 역사는 그렇게 해석할 수 없다. 이성적인 논리로 보았을 때 성녀의 창립이라는 사건은 이해될 수 없고, 그러한 논리에 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성녀 데레사 창립에 있어서 걸림돌이 되었던 것 중에 하나는 16세기 당시 여인들이 갖은 위상이었다. 여인으로서 창립한 다는 것은 많은 난관을 겪어야 했다. 16세기 스페인 뿐만 아니라 전 유럽은 여인에 대해서 상당히 적대적인 환경 속에 놓여 있었다. 스페인은 아랍에 영향을 많이 받아서 반 여성적인 흐름의 상황이었다. 특히 스페인은 종교 재판관을 운영하여 종교 재판관이나 신학자들은 여성을 교회 내에서 활동하는 것을 금하였다. 특히 신비 체험한 여성들은 상당히 요주의 인물로 주목되었고, 여성들이 정신 기도를 한다는 것을 상당히 위험적인 요소로 보았다.

성녀 데레사가 우리 개혁 가르멜 수도회를 창립하는 데 있어서 힘들었던 것 중에 하나는 여성으로서 남자 수도회를 창립했다는 사실이다. 수도회 역사상 이러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따라서 성녀 데레사는 창립에 있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 우리 역사상 성녀 데레사가 여인이면서 창립자이었기 때문에 역사 안에서 그

이후에 어려운 문제가 무엇인가?

통상 역사적으로 볼 때 남자 수도회 특징은 사제 중심 수도회라는 것이다. 사제 중심이라는 수도회는 교계 제도에 속한다는 것이다. 성녀 데레사는 여성의 사회적은 구조를 보았을 때 교계 제도라는 위계 구조에 속하는 수도회를 창립한 다는 것은 힘들었다. 또한 성녀가 사제라는 교계 내에 관할권을 갖고 있는 위치에 있는 사제 중심으로 하는 수도회를 만든 다는 것 자체가 어려움과 동시에 이 일을 이루었기 때문에 역사상 새로운 현상이었다.

우리 수도회 역사가들이 사모님의 창립자로서 위상에 대한 해석을 하면서 사모님은 단지 사상적인 차원에서 지주였을 뿐, 창립자는 아니었다. 진정한 남자 수도회 창립자는 십자가의 성 요한이라고 말하였다. 왜냐하면 여인으로서 교회 내에서 관할권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사모님을 창립자로 떠받드는 것은 모순이라고 어느 역사가가 주장하였다.



1. 개혁 가르멜 수녀원 창립 과정에서 하느님의 개입

우리는 성녀가 창립 과정에서 하느님께서 어떻게 개입하셨는 지를 보게 된다. 성녀 데레사는 신비적인 현상들을 많이 체험을 하게 된다. 그래서 성 요셉 가르멜 수녀원을 창립하기 전에 신비적인 말씀을 듣게 된다. 주님께서는 “너는 곧 내가 큰 일을 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라는 말씀을 하셨고, 성 요셉 수녀원을 일컬어서 “모든 교회의 별이 될 것이다.” 라는 중요한 신비적인 말씀을 성녀에게 들려 준다. 즉, 그리스도께서 하신 이 신비적인 말씀은 성 요셉 가르멜 수녀원이 개혁 가르멜 수녀원으로서, 그 다음에 창립된 수도원, 수녀원에 빛을 비추어 준 별이라는 예언적인 말씀이 이루어졌다. 따라서 성 요셉 가르멜 수녀원은 마치 씨앗처럼, 거기서부터 싹이 트고 나무가 자라서 온 세상을 덮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씨앗이다.그래서 가르멜이 온 세계에 퍼지게 되었다.

또 하나의 예로 성녀가 체험한 탈혼을 병행한 현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성 요셉 가르멜 수녀원이 절대적인 청빈을 바탕으로 창립되어야 한다고 성녀는 보았다. 하지만 도미니꼬 수도회 대표적인 학자인 도밍고 이바녜스 신부님은 이 점에 대해서 반대하였다. 절대적인 청빈으로 바탕으로 성 요셉 가르멜 수녀원을 창립해야 한다는 성녀 데레사의 견해를 반대하였던 이 신부님은 얼마 후에 마음을 바꾸어서 절대적으로 지지하였다. 사모님은 이러한 이바녜스 신부님의 변심이 하느님의 개입이었다라고 생각하였다. 성녀는 일반적으로 신학자의 견해에 귀를 기울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신학자의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도밍고 이바녜스 신부님이 이러한 경우이다. 반면에 알칸타라 베드로 신부님이 성녀에게 창립 과정에 도움을 주면서, 절대적인 청빈을 바탕으로 창립하라는 이 신비가의 말을 성녀는 들었다.

방금 위의 예는 신학자의 말은 듣지 않고 신비가의 말을 듣지만, 또 다른 경우에는 신학자의 말을 듣는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서 신비현상(현시, 신비적인 말씀, 계시)에 대한 식별은 신학자들의 견해를 들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말씀이 담겨있는 성경이야 말로 이러한 신비적인 현상에 빛을 주는 식별 기준이었기 때문이다.따라서 성녀는 그런 것을 잘 알고 있는 신학자들의 말을 따랐다.

성녀가 고해사제들에 대해서 권고하면서, 여러 고해 사제들을 공동체 수녀님들께 접촉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고해 사제들은 죄를 사해주는 것만이 아니라, 신비 현상을 식별해주고 지도해 줄 수 있는 사제들을 고해 사제로 발탁하도록 권고 하였다. 그래서 성녀는 수녀님들 중에 신비 체험을 하고 있다면 그것을 식별해줄 수 있는 신부님을 청할 수 있는 권한을 원장 수녀에게 부여하였다.

성 요셉 가르멜 수녀원 창립 과정에서 돈이 부족했다. 마침 신대륙에 간 성녀의 동생인 로렌소가 돈을 보내 주었다. 이 돈으로 성 요셉 가르멜 수녀원을 리모델링 할 수 있었다. 이것이 하느님이 섭리적인 개입이라고 할 수 있다. 사모님의 동생 로렌소는 1575년 세빌랴 가르멜 수녀원이 창립될 당시에 완전히 스페인으로 돌아왔다. 1562년 창립 당시 동생이 보내 준 돈으로 수녀원의 집을 구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창립과정에서 하느님의 섭리적인 개입 사건을 지금까지 보았다. 한 가지 더 살펴보자면 성녀 데레사는 1567년에 프란치스코 수도회 말도라도 신부님을 만난 이후로 신대륙에 죽어가는 영혼 구원을 위한 열정을 갖게 되고, 성녀는 그 때부터 교회를 위한 사도적 열정으로 적어도 기도로서 교회의 큰 힘을 불어넣어 주겠다라는 원의를 갖게 된다. 성녀 데레사는 그때부터 신비적인 말씀을 듣는 체험을 하게 된다. 그때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은 “딸아 조금만 기다려라 그러면 내가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이 말씀의 의미는 그 이후(1567년)부터 이루어지게 되는 남·녀 가르멜 수도회 창립사를 말한다. 자서전 35장 12절에서 성녀가 모든 창립에 있어서 창립자는 하느님이시고 예수 그리스도 이시라는 것을 전해주고 있다. 성녀 데레사는 하느님의 뜻을 전해주는 도구 일뿐, 자신은 창립 과정에서 아무것도 아니다. 일을 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끊임없이 우리에게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사모님의 이러한 생각은 개혁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해석의 중요한 열쇠가 된다. 성녀의 창립에 있어서 근본적인 것은 하느님이시라는 것, 성녀는 자기 자신을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일 뿐이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사모님의 자연 본성적인 능력이나, 거룩함이 바탕이 되었겠지만, 그 이상으로 하느님께서 자신을 사용하고 있다라는 것을 의식이 아주 강하였다. 우리는 이 점에 주의해서 창립 이야기를 봐야 한다. 하느님이야 말로 창립의 주체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