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레사적 카리스마의 기원과 발전(5)







2. 개혁 가르멜 수도회의 공동체 내에서 내부 생활

이것은 첫 번째 성 요셉 가르멜 수녀원 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 창립된 여러 수도회, 더 나아가서 오늘을 살아가는 가르멜 남·녀 수도원의 공동체 생활을 포괄하는 중요한 주제이다.


1) 맨발 가르멜 수녀원의 삶


(1) 성소 식별

이 주제는 가르멜 수녀님들에게 상당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수녀원 공동체 숫자가 13명에서 15명, 최대 21명까지 허용되었는 데, 이러한 제한된 회헌을 바탕으로 공동체 생활이라는 것은 중요할 수 밖에 없다. 가르멜 수녀원에서 지향하는 공동체 생활이라는 것은 형제적인 친교의 생활이다. 따라서 성소자들을 식별하는 것은 중요할 수 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성녀 데레사가 지향하는 공동체는 기도, 관상, 신비생활을 하는 공동체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먼저 이루어져야 할 근본적인 바탕은 진정한 형제애가 흐르는 형제적인 친교 생활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기도 공동체로서 역할이 잘 이루어진다.

성녀 데레사가 지향하는 공동체를 이루면서 중요한 것은 성소자들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심리적인 문제가 있거나, 여러 면에서 비정상적인 지원자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 성녀가 지향했던 공동체에 적합한 사람은 기본적인 선상에서 준비된 사람들이었다. 예를 들어서 현명하고, 다른 이들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사람들, 수도 생활에 항구할 줄 아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 등의 기본적인 품성을 갖고 있는 이들이 수도 공동체에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성녀 데레사는 당신의 공동체에 수사들, 수녀들을 받아들이는 데 아주 신중하였다. 예를 들어서 1562년 8월 24일에 창립한 성 요셉 가르멜 수녀원에 첫 번째 수련 수녀들이 4명이었다. 성녀는 이들을 겸손과 고행과 기도가 충만한 분들이었다라고 말하였다. 다시 말해서 사모님은 이 4명의 수련 수녀들을 들어서 위대한 하느님의 여종이라고 하면서 완덕의 정신, 기도의 정신이 충만한 분들이라고 일컬었다. 당시 16세기 스페인에 수도 생활의 성소자 식별에 대해서 말하자면, 강생 수녀원에는 성씨, 부유, 사회 계층이 어느 출신인지, 수녀원 위치가 달랐다. 이러한 세속적인 기준을 배제하고 당신의 개혁 가르멜 수녀원에 다른 성소 식별 기준인 덕성 스러운 품성을 적용하였다.

성녀 데레사는 사람들의 영을 보고 식별할 줄 아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개혁 가르멜 수녀원에 오는 지원자들의 품성과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 지를 잘 식별할 수 있었다. 성녀는 성소자 식별에 아주 신중하였다. 그래서 성녀가 말했던 이상적인 성소자는 다음과 같은 성품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현명함, 상식을 갖춘 사람, 영이 강한 사람들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서 죽기 까지 할 수 있는 강인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을 원했다. 그래서 성녀는 구제 받기 위해서 수녀원에 들어오는 이들을 아주 거부하였다.

성녀 데레사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목숨을 내어놓을 수 있는 성소자를 원하였다. 인간적인 안락함을 추구하는 그러한 사람들을 원하지 않았고, 참된 그리스도 신자들의 정신을 가진 사람들, 수도 생활 하면서 많은 어려움에 맞서서 항구할 수 있는 사람들을 원하였다. 만약에 그것을 원치 않는 다면 과감하게 수도원을 떠나도록 식별해주어야 한다.

성녀 데레사가 성소자 식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자세하게 말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완덕의 길』14장 소제목에 잘 나와 있다. “위에서 말한 바와 어긋나는 정신을 가진 사라에게는 수도서원을 허락지 말아야 한다.” 라고 사모님이 제목을 붙였는 데, 이것은 자신의 명예만을 추구하는 수녀, 자기가 고귀한 가문 출신이라고 하면서 성씨를 들먹이면서 거기에 집착하는 수녀 등의 세속적인 정신이 남아있는 수녀들에게는 서원을 허락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작품 이외에도 성소자들을 올바로 식별하기 위한 기준으로 사모님은 여러 문헌에서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예를 들어 회헌, 수녀원 시찰법에서 잘 나타나 있다. 수녀원 시찰법은 성녀가 그 당시 교황 순시를 하였던 예로니모 그라시안 신부를 위해서 썼던 것이다. 성녀는 이 시찰법 조항 안에 성소자 식별 문제를 거론하였다.

성녀 데레사가 제시했던 성소자를 받아들이는 기준 하나는 지원자의 품성 뿐만 아니라 원장 수녀님과 공동체의 권리에 속한다. 그 당시 성행했던 외부 압력으로 수녀원에 입회하는 경우들을 성녀는 완전히 배제를 하고 어떠한 외부 압력도 이것을 강요할 수 없다고 말하였다. 구체적으로 그 당시 수도 생활의 환경이라고 하는 것이 그러한 외부 압력이 자행되었다. 왕, 귀족 자녀들의 딸, 혼외에서 낳은 딸들을 원장이나 여 아빠스로 임명해서 집어넣는 경우가 자행되었는 데, 이러한 것들을 성녀 데레사는 배제하였다.

그래서 성녀는 당신이 세운 공동체는 귀족 출신들의 자제들이 특권을 누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성녀는 그들이 귀족 출신이든 평민 출신이든 평등함을 공동체 내에 기본 환경으로 삼았다. 그 당시 수도 생활 전체적인 맥락 안에서 볼 때 상당한 새로운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사모님이 지향했던 초창기 우리 수도 생활의 모습이었다. 사모님이 세운 개혁 가르멜 수도회,수녀회 내에서는 귀족 자제들이 특권을 갖고 행사할 수 있는 환경을 성녀는 허락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우리 수도회 초창기에 귀족 자제들이 입회를 했지만, 성녀는 그들에게 특권을 허락을 하지 않았다. 수도 공동체에서는 모두 평등했고 서로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공동체를 지향하였다. 성녀는 당신이 세운 수녀회에 입회하는 수녀들이 지참금을 갖고 오지 못하게 하였다. 어느 누구에게나 돈을 요구 하지 않았다. 따라서 합당한 품성을 지닌 지원자들에게는 언제나 문을 열고 환영하였다.

성녀 데레사가 성소 식별 기준 중에 하나는 바보 같은 수녀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성녀는 어리석은 수녀들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하였는 데, 후천적으로 높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만을 받아들이라는 것이 아니라, “현명함”을 지닌 이들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성녀가 받아들이고자 하였던 지원자들은 품성이 좋고, 현명하고, 윤리적으로 건강한 그런 사람을 원하였다. 예를 들어서 바르톨로메오 성녀 안나를 들 수 있다. 그녀는 귀족 출신 자녀가 아니라 목축업자의 자녀였다. 하지만 좋은 품성을 갖고 있어서, 성녀가 받아들여서 나중에 우리 수도원에 큰 역할을 하였다.

  사모님은 개혁 수녀원에 10~16세 소녀 지원자 4명을 받은 적이 있었다. 성녀가 이 소녀들을 받아들여서 입회를 시켰지만, 인간적인 품성과 서원을 할 수 있는 성숙함을 지닐 때까지 서원을 시키지 않았다. 비록 나이가 어렸지만 품성이 좋은 소녀들을 성녀는 받아들여서 잘 키워서 그러한 품성과 성숙함을 지녔을 때 서원을 시켰다. 이것은 그 당시 스페인 수도 생활의 관례와는 다른 새로운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