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레사적 카리스마의 기원과 발전(6)






(2) 공동체 생활


① 봉쇄 · 관상 생활

관상 생활, 봉쇄 생활에 대해서 살펴본다. 봉쇄라고 하는 개념은 그 당시 엄격한 봉쇄가 지켜지지 않았다. 엄격하게 이루어 졌던 것은 트렌트공의회 개혁을 통해서이다. 1545년 ~ 1563년 까지 있었다. 트렌트 공의회 25회기에서 공의회 교부들은 수도회 개혁 한 일환으로 엄격한 봉쇄를 부여하게 되는 데, 이 때 성녀 데레사는 공의회 개혁 정신을 받아들여서 수녀원을 엄격하게 세우게 되었다.

성녀 데레사가 설정한 엄격한 봉쇄는 단순히 공의회에서 부여하였기 때문에 봉쇄를 엄격하게 세운 것이 아니라, 보다 깊은 관상 생활을 지향하는 성소자들을 위해서 세운 것이다. 그런 수녀들이 고독과 봉쇄 속에서 하느님을 깊이 체험하고 관상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세운 것이 봉쇄였다. 성녀는 이러한 의도를 동생에게 편지를 쓸 때 언급한 적이 있다.

창립사 마지막 부분에서 관상 생활, 봉쇄 생활을 옹호하는 다음과 같이 말씀을 하였다. 하느님을 깊이 체험하려면 봉쇄가 맞다. 봉쇄 밖에서 지내는 것은 마치 물고기가 물 밖으로 떠나는 것과 같다. 따라서 하느님을 깊이 체험하려면 봉쇄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사모님의 설정하신 엄격한 봉쇄라고 하는 것은 관상 생활 이라고 하는 맥락 안에서 봐야 그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다. 봉쇄와 관상 생활은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다. 봉쇄라고 하는 것은 관상 생활을 할 때 그 본래적인 의미를 갖는다.

성녀 데레사가 개혁 가르멜 수도원을 창립할 때 중요하게 보았던 것 중에 하나는 성녀는 창립을 하는 데 있어서 우리 수도 내에 은수적인 요소를 배제하고자 하였다. 성녀 데레사는 도시, 작은 마을에 창립을 하려고 하였다. 성녀는 수녀원을 되도록 큰 도시에 창립을 하려고 하였다. 왜냐하면 성녀는 노동을 통해서 생활을 유지할 수 있고, 희사를 통해서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Q) 16세기 당시 사모님이 큰 도시에만 창립을 하였다. 그 당시 시대 상황을 이루어진 배경에 이루어진 창립과 오늘날 이러한 상황에서 사모님의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가? 신부님 견해 : 꼭 큰 도시는 아니더라도 작은 마을에 창립할 수 있지 않을 까. 꼭 희사에 의존해서 우리가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작은 마을에도 창립할 수 있다. 성녀 데레사는 남자 가르멜 수도원 창립지에서 가장 적합하게 생각한 곳은 대학 가까운 장소 였다. 사모님은 수사들의 공동체가 그 당시 스페인에서 대학 도시로 유명한 알칼라, 살라망카, 발랴돌리드 이 세 도시에 맨발 가르멜 남자 수도원이 창립되기를 원하였다. 특히, 살라망카 발랴 돌리드. 그래서 성녀는 예로니모 그라시안 신부님에게 발랴돌리드에도 남자 가르멜 수도원에 창립되기를 원하였다고 권하였다. 성녀 데레사는 여기에서 우리 수사들이 공부를 많이 하기를 바랬다.

사모님이 우리 수사들 공동체 세울 때 대학 가까운 곳에 수도원을 세우게 한 것은 엄청난 새로움이다. 비록 성녀가 대학에서 공부한 사람은 아니지만 수도회의 미래 비전을 위해서는 엄청난 일을 하셨다. 이런 대학 도시에 남자 가르멜 수도원이 설립되면서 당대의 수준 높은 대학에서 성소자들이 들어와서 우리 수도회를 학문적으로 풍요롭게 하기를 바라였다. 학문적으로 잘 양성을 받은 이들이 대학에서 강의를 하기를 바라였다. 그래서 우리 수도회가 학문적으로 풍요로워지기를 원하였다. 성녀의 이런 비전은 그 당시 동시대 다른 개혁 수도회가 지향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이었다. 왜냐하면 다른 개혁 수도회는 엄격함과 은수자적인 경향만 고집하였다. 학문적인 풍토를 남자 수도회에 뿌리 내리고자 했던 성녀 데레사의 미래의 식견은 놀랍다.

이러한 성녀 데레사의 미래 비전에 충실하다면 오늘날 살아가는 우리들 역시 사모님의 비전을 오늘이라는 맥락에서 구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특히 영성 신학을 깊이 공부하기를 바라고, 교회 내에서 여러 대학, 가르멜 학술 기관에서 공부하고 가르치기를 바란다.

가르멜 수도회의 사명이라고 하면 영성 생활의 점수를 교회 내에 전파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우리 수도회의 선조, 성인들의 영적인 메시지를 교회 내에 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먼저 우리가 그것을 살아야 한다.


② 교회의 사명 · 사도직

그 당시 모든 봉쇄 · 관상 수도회의 기본적인 삶의 패턴은 수덕 생활을 하는 것, 자기 성화하는 것만을 지향하였다. 성녀 데레사가 가르멜 수녀원에 새롭게 첨가한 카리스마는 관상 생활 · 성화 생활에 교회를 돕고 교회를 위해서 봉사하는 사도적인 전망을 첨가하였다. 이것이 사모님이 다른 수도회와 차별화 되는 관상 수녀님들의 카리스마이다.

우리 수도회 내에서 성녀 데레사의 정신을 둘러싸고 있는 논쟁에 대해서 한 가지 살펴 본다. 성녀는 개혁 가르멜 수도회에 부여 했던 정신 중에 “부드러움 · 유연성”의 특징을 우리 수도회의 기풍을 집어 넣었는 데, 성녀는 이러한 특징을 초창기 남자 가르멜 수도회에서 있었던 “엄격함”의 정신과 어떻게 조화 시켰는 가?

성녀 데레사의 영성은 무엇보다도 “엄격함” 영성인데, 복음 정신을 깔축없이 철저히 사는 이러한 차원에서 보면 사모님의 영성은 엄격함을 지향하였다. 그래서 성녀 데레사의 엄격함 · 철저함은 본질적인 것에 속한다. 특히 우리는 성녀 데레사의 『완덕의 길』에서 이 점을 잘 찾아볼 수 있다. 성녀는 『완덕의 길』에서 “이탈” 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한다. 이탈이야 말로 엄격함에 중요한 개념이다. 성녀 데레사의 엄격함은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근본적인 자세이다. 복음을 철저히 살고자 하는 자세는 성녀 데레사에게 영향을 주었다. 성녀는 엄격함을 지향했으나, 동시에 이것을 풀어내는 데 있어서는 부드러움 · 현명함 · 인본주의적인 정신에 입각해서 이러한 엄격함을 잘 표현해 내고자 했다. 근본정신은 엄격함이지만 이것을 표현해 내는 데 있어서는 인본주의 정신을 갖고 현명함 · 부드러움 가운데 이것을 살아내었다. 이러한 사모님의 모습들이 데레사적인 스타일이었다.

구체적인 측면에서 보면 성녀는 우리 수도회의 규칙에 따라서 가난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데 있어서 “가난”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을 우리에게 제시해 준다. 사모님은 맨발 가르멜 수녀들이 어떻게 철저한 가난을 살 수 있는 지, 엄격한 봉쇄를 사는 지에 대한 설명하는 데 있어서 『완덕의 길』1장에서 말하고 있다. 『완덕의 길』 1장 제목에서 “내가 이 수도원을 엄격한 봉쇄로 세우게 된 이유” 라고 언급되어 있다.

성녀는 성 요셉 수녀원을 창립할 당시 철저한 가난에 입각해서 연금도 없이 살아가는 수녀원을 세울 려고는 하지 않았다. 그 당시 개신교 종교 개혁으로 인해서 고통당하고 있는 교회를 보면서 성녀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서 보다 철저한 가난의 정신 하에 수녀님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살 수 있도록 수녀원을 세우고자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성녀가 수도원에 부여하고자 했던 엄격함을 엿 볼 수 있다. 성녀는 『완덕의 길』1장 1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 아까 내가 썼다고 한 그 책에서(자서전 32-34장 참조) 나는 이 수도원(1562년에 이룩된 아빌 라의 성 요셉 수도원)을 세우게 된 동기와 이 집에서 옹골진 봉사가 있어야겠다는 것을 내가 알 아듣도록 주께서 내리신 큰 은혜를 대충 말해두었습니다마는, 사실 처음에는 보기에도 이렇듯 엄 하고 게다가 연금조차 없는 수도원을 세울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조금도 아쉬울 것 없 이 마련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가냘프고 못난 위인이기는 하지마는, 내 편의보다는 제법 좋은 뜻 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성녀는 『완덕의 길』 2장에서는 1장에서의 이야기를 발전시켜서 보다 철저한 청빈을 사는 생활방식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하느님의 섭리에 온전히 우리의 삶을 맡기는 삶의 스타일을 언급하고 있다. 그래서 성녀는 우리 수도회의 초창기의 사막 은수자들의 삶의 모범을 따라 철저한 가난을 바탕으로 살아가도록 초대하고 있다. 또한 가르멜 수녀들의 삶은 철저한 봉쇄 하에서 수덕적인 삶을 지향하며, 동시에 참된 형제애를 영위하도록 불리움을 받았다. 더 나아가서 가르멜 수도회의 성소에 근본적인 삶의 지향점은 신비적인 삶을 살고 체험하도록 불리움 받았다. 이것은 단순히 신비적인 현상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하느님의 사랑 체험으로 불리움 받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수도회가 지향하는 근본적인 성소이다.

초창기에 우리 창립의 역사에 있어서 많은 수녀님들이 신비생활을 영위했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이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하느님의 은총 작용 하에 이루어지는 깊은 영성 생활이다. 『완덕의 길』 16장에서 신비 생활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이런 예를 들고 있다. 신비 체험을 한 수녀들과 신비 체험을 하지 못한 수녀들이 있었다. 신비 체험이라고 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순수한 선물이지 우리가 원해서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신비 체험을 하는 수녀들이 자신은 그것을 한다고 해서 신비 체험을 하지 못한 수녀들과 비교해서 우위에 있다는 교만해서는 안 된다. 신비 체험을 하지 못한 수녀들이 성화의 길을 제대로 걷고 있을 때, 신비 체험을 한 수녀들과 비교해서 덜 거룩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 역시 참된 성화의 길을 가고 있고 영적 여정에 진보하고 있다는 것을 성녀가 『완덕의 길』 16장에서 언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