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레사적 카리스마의 기원과 발전(8)







3장. 십자가의 성 요한



1. 십자가 성 요한의 위상(位相)이 왜곡된 시각


십자가 성 요한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사부님의 위상이 어떻게 역사를 통해서 왜곡되어갔는지를 보았다. 초창기 우리 수도회 역사에서 십자가의 성 요한은 사모 성녀 데레사처럼 창립자로 자리매김 하려는 경향을 갖고 있었다. 즉, 여자 가르멜 수도회의 창립자를 사모 성녀 데레사로 보았고, 남자 가르멜 수도회의 창립자를 십자가 성 요한으로 보았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사부님을 창립자로 보는 이런 시각이 상당히 왜곡된 것이라는 것을 살펴보았다.

십자가의 성 요한의 생애를 쓴 초기 전기작가들 사이에서 사부님을 가르멜 산의 은수자처럼 묘사하려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을 보게 된다. 십자가의 성 요한을 가르멜 산의 우리 선조들처럼 순수 관상 생활만을 지향했던 그런 은수자로 부각시켰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의 진실에 다가서야 하는데 실제로 십자가의 성 요한의 모습은 순수한 관상가였지만 동시에 아주 사도직에 전념했던 활동가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두 가지 측면을 봐야 한다. 순수 관상가라고 하는 그 측면만을 강조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초창기 십자가의 성 요한 전기 작가 중에 가르멜 수도회 출신인 예수 마리아의 요셉이라고 하는 신부가 있다. 이 신부는 사부님에 대해서 책을 썼는데, 거기서 그는 사부님을 사도직 활동을 하지 않는 순수 관상가로만 묘사했다. 그런데 이 신부는 사부님의 생애에 대해서 쓰면서 사모님이 두루엘로 수도원을 방문하셨을 때 정황을 이야기하는데 있어서 사모님이 두루엘로의 그 초창기 우리 수도회의 신부들의 모습 특히, 사도직 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상해 했다고 서술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역사적인 진실이 아니다. 예수 마리아의 요셉 신부는 그런 식으로 사부님의 모습을 순수 관상가로만 표현하려고 하고 사도직에 대한 부분은 왜곡을 시켰다.

하지만 예수의 성녀 데레사가 이상하게 여겼던 것은 고행 그 자체가 아니라 과도한 고행이었던 것이다. 이것을 빼먹고 그냥 고행하는 것 자체를 이상하게 보셨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 마리아의 요셉 신부는 사부님과 관련해서 두 가지 왜곡된 진실을 전파했다. 첫 번째는 사부님을 순수 관상가로만 보려고 했고, 또 하나는 이런 식으로 사부님의 그 초창기 모습을 이런 과도한 고행하는 거 그 자체에 문제를 걸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신부는 이러한 일부 왜곡된 시각을 담은 사부님의 전기를 출판하셨는데 그게 최근에 1992년 살라망카에서 새롭게 출판되었다. 『공경하올 십자가 성 요한 수사의 생애와 덕행들에 대해서』 라고 하는 제목으로 약 20년 전에 출간되었다. 우리가 이런 왜곡된 일련의 시각들, 사부님의 생애에 대한 잘못된 시각들을 보았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초창기 우리 수도회 역사에 있어서 우리 개혁 가르멜 수사들을 순수 관상가로만 보는 그러한 시각, 특히 가르멜 수도회 초창기 가르멜 산 은수자들 사막의 은수자들을 모방하는 그들의 후예라고 하는 그런 관점에서만 우리 수도회 초창기 개혁 가르멜 수도자를 보고자 했던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잘못된 것으로써 무엇보다도 십자가 성 요한의 모습을 왜곡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개혁 가르멜 수사들에게 바라고자 했던 사모 성녀 데레사의 원의를 왜곡 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잘못된 역사적인 시각을 가졌던 예수 마리아의 요셉 신부 이후에도 역시 우리 수도회의 다양한 초창기 역사가들은 우리 수도회 역사 특히 우리 수도회 초창기의 맨발 가르멜 수사들을 갈멜산의 은수자들의 후예로 보려고 하는 경향이 짙었다. 그래서 그 이전에 탁발 수도회 특징을 가졌던 우리 수도회 원형을 망각해가는 그런 과정에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옳지 못한 시각이었다. 이는 특히 도리안 신부가 우리 수도회를 통치하게 되면서 이러한 은수자적인 카리스마를 더욱 더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2. 십자가의 성 요한이 데레사적 카리스마에 기여한 점

십자가의 성 요한이 성녀 데레사의 카리스마에 기여한 부분들에 대해서 살펴보자면 먼저 우선 사부님은 하느님을 절대적인 존재로 부각시켰다. 즉 사부님의 표현으로 하자면 ‘Todo’ (전부, 전)이다. 반면에 인간 그리고 세상은 ‘Nada’라고 표현하고 있다. 즉 절대자이신 하느님과 비교해서 인간과 세상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 무(無)라고 하는 그런 개념들을 좀 더 부각시켰다.

이러한 선상에서 사부님은 우리 남·녀 가르멜 수도자가 모두 하느님 안에서의 변모적 합일이라고 하는 그런 원대한 비전을 향해서 나아가도록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이러한 신비적인 여정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것이다. 적어도 우리 회원 모두가 이런 목적을 향해서 원의를 품고 그 여정을 나아가도록 초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부님의 비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부님이 쓰신 작품을 읽어야 한다. 특히 사부님이 쓰신 주요 작품 4가지 중에 『어둔 밤』과 『가르멜 산길』는 부정적인 차원에서 여정을 다뤘다면, 『영혼의 노래』와 『사랑의 산 불꽃』은 긍정적인 측면에서 이 여정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어둔 밤』과 『가르멜 산길』은 『영혼의 노래』와 『사랑의 산 불꽃』을 서로 보완하고 있다.

사부님은 우리에게 제시하는 영적 여정이라고 하는 것은 두 가지 부분에서 드러나고 있다. 첫 번째는 정화적인 면을 들 수 있다. 사부님은 정화 주제를 『어둔 밤』과 『가르멜 산길』에서 다루고 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하느님과의 합일에 관한 부분이다. 하느님과의 합일에 대해서 다룬 것은 『영혼의 노래』와 『사랑의 산 불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를 다루고 있는 작품들은 모두 사부님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하나의 총체적인 전망 · 총체적인 여정을 구성하는 것이다. 즉 하나의 단일한 여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십자가의 성 요한이 우리에게 제시한 영적 여정에서 정화라고 하는 부분과 하느님과의 합일이라는 부분에서, 정화가 먼저 일어나고 그것이 끝난 다음에 합일이 일어난다라고 보는 시각은 잘못된 것이다. 사실상 이 두 가지 단계는 서로 섞여서 어떻게 보면 동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특히 정화는 하느님과의 합일의 여정에 있어서 마지막 부분에서 더 격렬하게 일어난다. 예를 들어서 성녀 소화 데레사 그리고 삼위일체의 복녀 엘리사벳은 임종하시기 전에 아주 깊은 정화의 단계를 거쳤다. 그래서 이 두 가지 단계를 하나의 한 단계가 일어나고 그 다음 국면이 이어지고 이런 어떤 연속적인 현상으로 보면 안 되고, 두 가지가 서로 섞여서 혼재되어 드러나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영적 여정을 소개한 주요 4개 작품 이외에도 가르멜 남·녀 수도자들의 일상적인 삶 안에서 그러한 영적 여정이 어떻게 구체화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두 개의 대표적인 소품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하나는 『경계의 가르침』(CAUTELA)이라는 작품과 또 하나는 『어느 수사에게 보낸 4가지 권고』라고 하는 소품을 통해서 잘 드러나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 우리 수도생활에서는 다음과 같은 경향들이 좀 짙게 배어있었다.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원장 신부나 원장 수녀의 소관이고,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리고 내 삶은 내 삶이고 다른 형제들의 삶은 그들의 삶이고 나랑 전혀 상관이 없다는 식이었다. 그러니까 공동체적인 차원이 좀 덜 강조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는 공동체 회원 모두가 다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서로 책임을 가지고 함께 꾸려 나간다는 것이다. 원장 신부나 원장 수녀 혼자만의 공동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의 성녀 데레사의 개혁에 대해서 십자가 성 요한은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계셨을까는 좀 생각해 볼 일이다. 사모님은 우리 개혁 갈멜에 있어서 창립자이다. 또한 어떻게 보면은 발기인(發起人: 단체의 설립을 주도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기차에 비유하면은 많은 기차 칸들이 있는데, 나머지 기차를 다 이끌고 가는 원동력, 그 동력의 중심이 되는 것은 첫 번째 칸에 있다. 사모님은 그런 위상을 가지고 있고, 그 뒤이어오는 사부님을 포함해서 여러 인물들은 사모님의 뒤를 이어서 그 영적 유산을 채워서 그 뒤를 따라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우리에게 영적 여정을 전해 준 탁월한 분이다. 그러나 리더로서의 면모는 그렇게 보여주지 않았다. 이건은 무슨 의미냐면, 사모님은 창립자이시고 리더였다. 하지만 사부님은 다만 그 창립자이고 리더인 사모님과 일치해서 창립에 협조했다는 것이지 리더로서 이니셔티브(initiative: 주도, 시작)를 가지고 창립을 주도했던 것이 아니란 것이다. 사부님은 젊은 시절 카르투샨 수도자가 되고자 했다. 그래서 침묵과 고독 가운데서 하느님을 추구하려고 했으며, 또 나중에 그 여력이 됐으면 집필을 하고 책을 썼을 것이다. 그런 여러 가지 활동을 하셨겠지만 그러나 사모님처럼 이니셔티브를 가지고 창립을 주도했던 분은 아니었다.